전쟁터에 나가면서 총을 들지 않겠다는 말은 처음부터 모순처럼 들렸습니다. 적을 죽이지 않겠다는 사람이 군에 입대해 동료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하면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데스몬드 도스의 선택이 무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다 오히려 동료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핵소 고지」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습니다. 동료들은 도스를 겁쟁이라고 조롱하고, 상관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 병사로 판단합니다. 도스는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군대를 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한 곳에 남을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입대했고, 다른 병사들이 사람을 죽일 때 자신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선택했습니다.그 선택이 말로만 끝났다면 영화의 감동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어린 사루가 기차역에 홀로 남겨지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아이가 잠깐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운데, 영화 속 사루는 자신의 이름과 사는 곳을 제대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다섯 살이었습니다. 더구나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도 아니었습니다. 잠든 사이 출발한 기차는 사루를 가족과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도시까지 데려갑니다. 처음에는 구글어스로 고향을 찾아낸 놀라운 실화를 다룬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과정은 기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기억에 남은 것은 기술보다 두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이 돌아올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고향을 지킨 인도의 어머니와, 아이의 잃어버린 과거까지 받아들이려 했던 호주..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당장 해줄 수 있는 위로가 없을 때 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힘들어도 언젠가는 잊고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영화도 대부분 그런 결말을 보여줍니다. 깊은 상처를 가진 주인공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가족의 사랑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슬픈 이야기라도 마지막에는 조금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그런데 정말 모든 상처가 시간으로 해결될까요. 겉으로는 밥을 먹고 일도 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은 그날에 그대로 멈춘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에게 이제 그만 잊고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잔인한 일은 아닐까요.「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이 질문에 편안한 답을 주..
※ 이 글에는 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람 한 번 안 피운 남편이나 아내가 있을까?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주변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봤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도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은 합니다. 제 주변에도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사람이 있고, 평소에는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아이들까지 두고 떠난 일도 있었습니다.영화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보면서 그런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29년 동안 함께 산 남편 에드워드는 어느 날 아내 그레이스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갑니다. 그레이스에게는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에드워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