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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트

펜스 (흑인 야구선수의 좌절, 부자 갈등, 울타리 의미)

무비 러버 2026. 9. 3. 20:34

목차


    출처 : 펜스 영화 나무 위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일하고 월급을 집에 가져오면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트로이 맥슨은 자신이 가장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아들에게 지붕과 음식을 제공했고, 아내와 한 가정을 오래 지켜왔으며,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쓰레기 수거원으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시대와 환경을 생각하면 그의 억울함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볼수록 책임을 다했다는 트로이의 말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가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들의 가능성을 막고, 자신의 상처를 아내와 자녀에게 넘깁니다. 자신이 받지 못한 기회를 아들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그것을 현실적인 충고라고 믿습니다. 가족을 위해 세운 울타리가 어느 순간 가족의 마음을 가두는 벽으로 바뀝니다.

    「펜스」는 화려한 사건이나 빠른 전개로 끌고 가는 영화가 아닙니다. 피츠버그의 작은 집과 뒤뜰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처음에는 트로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같은 공간의 공기가 점점 무거워집니다.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 가족이 오랫동안 참아온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덴젤 워싱턴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펜스」는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의 동명 희곡을 영화로 옮긴 2016년 작품입니다. 덴젤 워싱턴은 트로이를, 비올라 데이비스는 그의 아내 로즈를 연기했습니다. 두 배우는 2010년 브로드웨이 재공연에서도 같은 역할을 맡았고 각각 토니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원작 희곡의 대사와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1950년대 미국에서 살아가는 흑인 노동자 가족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출처: 미국영화연구소 「AFI Movie Club: Fences」

    흑인 야구선수의 좌절

     

    트로이는 과거 니그로리그에서 뛰어난 야구선수였습니다. 하지만 흑인 선수에게 메이저리그의 문이 닫혀 있던 시절이었고, 그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났을 때에야 인종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로이는 자신이 실력보다 피부색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트로이의 분노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흑인 선수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에도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은 일상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쓰레기 수거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왜 모두 백인이고 흑인 직원들은 뒤에서 쓰레기통만 들어야 하느냐는 트로이의 항의에서도 그 현실이 드러납니다.

    그는 회사에 문제를 제기한 끝에 흑인 최초의 운전기사 자리를 얻습니다. 트로이가 부당한 환경에 무조건 순응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용기가 있고, 친구 보노와 술을 마실 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도 있습니다. 덴젤 워싱턴은 트로이를 처음부터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말이 많고 허세도 있지만 가족을 위해 버텨온 생활인의 얼굴을 먼저 보여줍니다.

     

    트로이는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마다 야구 용어를 사용합니다. 인생을 투수와 타자의 대결처럼 설명하고, 죽음이 자신을 향해 공을 던지는 존재인 것처럼 말합니다. 야구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일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좌절을 남긴 일이기도 합니다. 이루지 못한 꿈을 놓지 못해 삶의 모든 판단을 야구에 빗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트로이의 말을 모두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과장하는 습관이 있고 자신의 실패를 설명할 때 불리한 부분은 빼놓습니다. 인종차별이 그의 기회를 막은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은 맞지만, 교도소 생활과 나이 등 다른 조건도 그의 선수 경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화는 트로이의 억울함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자신의 과거를 가족에게 휘두르는 방식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트 윌슨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센터는 「펜스」를 1950년대의 사회적 이동과 인종관계, 남성의 감정 억제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설명합니다. 트로이의 권위적인 태도 역시 개인의 성격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방식과 연결됩니다. 출처: 어거스트 윌슨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센터 「Fences」

    트로이를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을 용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는 차별의 피해자였지만 가족 안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선택을 막습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가혹했으니 아들에게도 가혹해야 한다고 믿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충돌

     

    트로이의 아들 코리는 미식축구에 재능이 있고 대학 스카우트의 관심을 받습니다. 코리에게 운동은 대학에 진학하고 지금과 다른 삶을 시작할 기회입니다. 하지만 트로이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결국 버림받을 것이라며 운동을 반대합니다. 자신이 겪은 실패가 아들에게도 반복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들을 보호하려는 행동처럼 보입니다. 괜한 희망을 품었다가 상처받기보다 기술을 배우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트로이가 젊었던 시절에는 흑인 선수가 동등한 기회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코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아버지의 청년기와 달라지고 있습니다. 트로이는 변화를 보지 않고 자신의 과거만 기준으로 아들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코리가 아버지에게 자신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트로이는 부모가 자녀를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먹이고 재워주는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책임졌으니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트로이가 가족에게 제공한 것과 빼앗은 것이 동시에 보였습니다. 그는 가족을 버리지 않았고 힘든 노동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인정과 애정은 주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들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코리의 운동 기회를 막는 트로이에게는 걱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투도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들이 자신이 얻지 못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트로이의 실패를 다시 확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를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덴젤 워싱턴의 표정과 말투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아들을 보호하고 싶으면서도 자신보다 멀리 나아가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입니다.

     

    두 사람의 충돌은 결국 몸싸움으로 번집니다. 트로이는 코리를 집에서 내보내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아들을 보호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장벽이 됩니다. 코리는 세상의 차별과 싸우기 전에 집 안에서 아버지의 좌절과 싸워야 했습니다.

    트로이의 첫째 아들 라이언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가로 살아가는 라이언이 돈을 빌리러 오면 트로이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않는다며 비난합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삶보다 자신이 생각하는 책임과 성공의 기준을 앞세웁니다. 두 아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트로이는 그 마음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조반 아데포가 연기한 코리는 덴젤 워싱턴의 강한 에너지에 밀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는 조심스러운 아들이지만 갈등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분노를 드러냅니다. 코리가 아버지에게 맞서는 모습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려달라는 요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로즈가 세운 경계

     

    트로이가 가족을 지켜왔다고 믿는 동안 실제로 가족을 하나로 묶어온 사람은 로즈였습니다. 로즈는 남편의 긴 이야기와 허세를 받아주고, 코리와 트로이 사이를 중재합니다. 집 뒤뜰에 울타리를 만들어달라고 계속 부탁하는 사람도 로즈입니다. 가족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이 울타리에 담겨 있습니다.

    트로이의 친구 보노는 어떤 사람은 밖에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세우고, 어떤 사람은 안에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세운다는 뜻의 말을 합니다. 로즈에게 울타리는 가족을 지키는 경계입니다. 반면 트로이는 울타리 공사를 계속 미룹니다. 가족이 자신을 기다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한 일을 외면합니다.

    트로이가 다른 여성 앨버타와 관계를 맺었고 아이까지 생겼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로즈가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합니다. 트로이는 자신의 삶이 한곳에 갇혀 있었고 앨버타와 있을 때 잠시 자유를 느꼈다고 변명합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했으니 자신에게도 숨을 돌릴 곳이 필요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로즈 역시 18년 동안 자신의 욕망과 가능성을 가족 안에 묻고 살았습니다. 트로이만 답답한 삶을 견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을 믿고 자신의 삶을 함께 꾸렸던 로즈에게 트로이의 외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자신이 바친 시간 전체를 부정하는 일이 됩니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이 장면에서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로즈가 참고 살아온 세월을 꺼냅니다. 눈물과 콧물이 흐르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트로이의 가슴을 밀치며 자신도 이 결혼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말합니다. 트로이의 말에 눌려 있던 로즈가 처음으로 이야기의 중심을 가져오는 순간입니다.

    덴젤 워싱턴의 연기도 강하지만 「펜스」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얼굴은 비올라 데이비스였습니다. 로즈는 남편에게 상처받은 아내에 머물지 않습니다. 앨버타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나고 갓난아기 레이넬이 남겨지자 아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트로이에게는 더 이상 부부로서의 관계를 기대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습니다.

    로즈가 레이넬을 키우기로 한 결정은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판단에서 나옵니다. 그렇다고 남편의 외도를 용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는 품지만 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는 분명한 경계를 세웁니다. 로즈가 원했던 울타리가 이 순간 완성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켜야 할 사람은 안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무너뜨리는 행동은 더 이상 마음 안으로 들이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가 로즈의 삶을 조금 더 보여주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강렬한 감정과 선택을 보여주지만 대부분의 장면이 트로이의 행동에 반응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로즈가 무엇을 좋아했고 가족 밖에서는 어떤 삶을 꿈꿨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면 인물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비올라 데이비스는 이 작품으로 제89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까지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출처: 아카데미 공식 제89회 시상식

    울타리 의미와 결말

     

    트로이는 외도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앨버타와의 관계가 끝난 뒤에는 죽음을 향해 다시 자신과 싸워보자고 외칩니다. 그는 평생 세상과 싸워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두려움과 상처를 가족에게 떠넘기며 살아왔습니다.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트로이의 장례식 날로 이동합니다. 군인이 된 코리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제라도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거리를 두려는 것입니다. 트로이와의 기억이 코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로즈는 코리에게 장례식 참석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의 잘못만으로 자신의 삶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합니다. 코리는 트로이를 미워하지만 자신 안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부분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습니다. 트로이를 용서하느냐와 별개로 그 영향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레이넬과 코리가 트로이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 함께 자라지 않은 두 사람이 노래를 통해 아버지의 기억을 공유합니다. 트로이는 가족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의 존재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좋은 기억이나 나쁜 기억 하나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트로이의 동생 게이브리얼은 전쟁 중 머리를 다친 뒤 자신이 천사 가브리엘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장례식에서 그는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해 낡은 나팔을 불지만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시 당황한 게이브리얼은 자신의 몸과 목소리로 춤추며 하늘을 향합니다. 그 순간 햇빛이 비치고 영화는 트로이의 죽음을 단순한 심판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이 장면을 트로이가 모든 잘못을 용서받았다는 뜻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트로이가 차별과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왔다는 사실과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은 함께 남습니다. 영화는 그를 완전한 피해자나 악인 가운데 하나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모순된 모습 전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제목의 울타리는 하나의 의미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로즈에게는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이고, 트로이에게는 죽음과 불안을 막으려는 경계입니다. 코리에게는 아버지가 자신의 미래 앞에 세운 장벽처럼 보입니다. 울타리는 사람을 보호할 수 있지만 너무 높아지면 서로의 마음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와 어거스트 윌슨의 대사입니다. 트로이가 자신의 과거를 풀어놓는 긴 독백, 로즈가 결혼생활의 상처를 터뜨리는 장면, 코리가 아버지에게 맞서는 순간마다 인물의 감정이 대사 안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평범한 뒤뜰에서 나누는 대화만으로 한 가족의 역사와 1950년대 흑인 노동자의 현실이 이어집니다.

    반대로 원작 희곡의 구조를 충실하게 옮긴 것이 영화의 한계로도 느껴졌습니다. 장면 대부분이 집과 뒤뜰에서 진행되고 긴 대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기보다 잘 찍은 연극을 관람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빠른 사건 전개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길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느린 속도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트로이의 말을 충분히 듣고 나서야 처음에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사람이 어떻게 가족을 지치게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 모습도 트로이의 성격을 구성합니다. 영화의 답답함 일부는 이 가족이 느끼는 답답함과 연결됩니다.

    「펜스」는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를 간단히 나누지 않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트로이의 잘못이 사라지지 않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해서 그가 겪은 차별과 고생까지 거짓이 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를 다음 세대에게 넘기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트로이가 아들에게 한 말보다 로즈가 세운 경계에서 더 큰 힘을 느꼈습니다. 가족을 지킨다는 것은 무조건 참고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호해야 할 사람을 품으면서도 자신을 계속 무너뜨리는 행동에는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울타리는 누군가를 가두는 벽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