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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제 과거의 기억을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욕창》은 제게 단순히 마음이 무거운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지나온 현실을 다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괴롭고 힘든 영화였습니다.
저는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를 11년 동안 모시고 살았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가는 일부터 수술과 입원 과정을 챙기는 일까지 거의 모두 제 몫이었습니다. 임신한 만삭의 몸으로 중환자실을 오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피로와 감정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욕창》을 보는 동안 영화 속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보다, 제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욕창》은 심혜정 감독의 장편영화입니다. 2019년에 제작되어 2020년 7월 2일 개봉했으며, 김종구·강애심·전국향·김도영 배우 등이 출연합니다.
영화는 퇴직 공무원 강창식과 뇌출혈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 나길순,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재중동포 간병인 유수옥을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길순의 몸에 욕창이 생기고 쉽게 낫지 않으면서, 그동안 가족 안에 감춰져 있던 갈등과 각자의 욕망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가족 간병 현실이 겹쳐 보였던 영화
가족 중 누군가가 오랫동안 아프면 병원에 한두 번 다녀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료 일정을 기억해야 하고, 검사와 수술 과정을 챙겨야 하며, 식사와 약도 살펴야 합니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의 큰일보다 이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이 사람을 더 지치게 합니다.
저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병원에 함께 가고, 수술과 중환자실 입원 과정을 챙겼습니다. 만삭이었던 때에도 해야 할 일을 미룰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고, 당시에는 그 누군가가 대부분 저였습니다.
《욕창》 속 돌봄도 비슷하게 다가왔습니다.
겉에서 보면 아픈 사람을 가족과 간병인이 함께 돌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각자가 감당하는 무게가 다릅니다. 누가 병원에 가고, 누가 시간을 내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누가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는지가 선명하게 나뉩니다.
영화 속 딸 지수에게 마음이 간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지수에게도 자신의 가정과 생활이 있지만, 부모에게 문제가 생기면 다시 불려 옵니다. 다른 가족에게도 각자의 사정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정이 있다는 말이 실제로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의 부담을 줄여주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모든 일을 떠안았다고 느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가족들이 자신의 사정을 먼저 이야기하는 모습을 편하게 바라보기 어려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잠깐의 방문이지만, 실제로 돌봄을 맡은 사람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돌봄 노동이 한 사람에게 몰릴 때
《욕창》은 한 사람을 착한 가족으로 만들고 다른 가족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단순하게 나누지 않습니다.
간병인 수옥에게도 생계와 체류 문제가 있습니다. 수옥은 주말에는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일을 그만두려 합니다. 창식은 아내를 돌보는 현실과 수옥에게 의지하는 감정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수옥이 비자 문제로 위장결혼을 하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창식은 자신과 결혼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자녀들이 모이면서 가족 안에 묻혀 있던 감정과 이해관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장면에서 돌봄은 더 이상 아픈 길순만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창식에게 수옥은 아내를 돌봐주는 간병인이면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수옥에게 창식의 집은 생계를 위한 일터이지만 자신의 삶 전체를 포기하면서까지 남아 있어야 할 곳은 아닙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결혼 선언에 반응하지만, 정작 그동안 어머니를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 모습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가족 간병에서는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과 실제로 시간을 내어 돌보는 일이 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걱정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병원에 동행하고 밤을 지새우며 일정을 조정하는 사람은 따로 생깁니다.
그 부담이 오랜 시간 한 사람에게 집중되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집니다.
힘들다고 말하면 아픈 사람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쉬고 싶다고 말하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참으면 돌보는 사람의 몸과 마음도 지칩니다.
영화는 이 문제에 간단한 해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구도 선뜻 맡으려 하지 않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돌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에게는 그 점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영화 속 갈등이 특별하거나 과장된 사건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현실과 너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욕창이라는 제목이 뜻하는 상처
욕창은 몸을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두었을 때 압박받은 부위에 생기는 상처입니다.
영화에서 길순의 몸에 생긴 욕창은 가족 안에 문제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계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욕창’이 길순의 몸에 생긴 상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면 몸에 상처가 생깁니다. 가족 관계도 비슷했습니다.
창식은 남편과 가장이라는 자리에 머물러 있고, 수옥은 간병인과 이주노동자라는 조건에 묶여 있습니다. 지수는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문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동안 말하지 못한 감정이 쌓이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상처가 안에서 깊어집니다.
돌봄을 직접 경험했던 저에게는 이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간병이 끝나거나 상황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동안 쌓인 감정까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느라 제 감정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욕창》을 보는 일이 그랬습니다.
영화가 제 기억을 억지로 끌어낸 것은 아니지만, 화면 속에서 반복되는 돌봄과 가족들의 갈등을 바라보는 동안 지나간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길순의 몸에 생긴 욕창처럼 겉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돌봄을 오랫동안 감당했던 사람의 마음에도 쉽게 낫지 않는 상처가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더욱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담담해서 더 괴로웠던 가족 이야기
《욕창》은 관객을 울리기 위해 감정을 크게 밀어붙이는 영화가 아닙니다.
슬픈 음악이나 극적인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가족의 일상과 대화를 차분하게 따라갑니다. 누가 완전히 옳고 누가 틀렸다고 판단해주지도 않습니다.
이런 연출은 영화의 장점이지만, 간병 경험이 있는 제게는 오히려 힘든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과장하지 않은 모습이 실제 생활과 더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간병은 매일 극적인 일이 벌어지는 생활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고, 약을 챙기고, 식사를 확인하고, 갑자기 생긴 문제를 처리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밖에서 보면 별일 없는 하루처럼 보이지만, 그 하루를 계속 책임지는 사람은 조금씩 지쳐갑니다.
영화는 그 피로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 가족이 서로 책임을 미루거나 자신의 사정을 내세우는 모습을 통해 보여줍니다.
전개가 빠르고 사건이 분명한 영화를 기대한다면 다소 건조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 인물의 사정이 한꺼번에 드러나기 때문에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불편함까지 이 영화가 의도한 감정처럼 느꼈습니다.
실제 가족 간병에도 깔끔한 결론은 없었습니다. 누군가 충분히 희생했다고 해서 모든 가족이 그 무게를 똑같이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상처가 정리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욕창》을 보고 따뜻한 위로나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11년 동안 치매를 앓던 시어머니를 모셨던 시간, 만삭의 몸으로 병원과 중환자실을 오갔던 일, 가족 돌봄이 대부분 제게 집중됐던 현실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로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됐습니다.
《욕창》은 가족이라면 당연히 돌봐야 한다는 말 뒤에 가려진 질문을 꺼냅니다.
누가 돌봄을 맡고 있는지, 그 사람은 얼마나 지쳐 있는지, 가족들은 책임을 실제로 나누고 있는지 묻습니다.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만큼 돌보는 사람의 삶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족을 간병해 본 분이라면 이 영화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지나간 경험과 감정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 간병과 돌봄 노동의 현실을 생각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본 뒤 제가 떠올린 것은 부모님께 전화해야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다”는, 오랫동안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돌봄을 한 사람이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면 가족이 걱정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행동, 책임까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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