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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트

정순 (중년 여성 디지털 성범죄, 공장의 2차 가해, 운전 결말)

무비 러버 2025. 10. 27. 21:13

목차


    다음영화 / 영화 「정순」 제작사 시네마루·배급사 더쿱디스트리뷰션

     

     

    피해자가 불법 촬영에 동의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어떤 반응부터 보일까요. 촬영물을 동의 없이 유포한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왜 촬영하게 두었을까”, “조금 더 조심하지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나 역시 「정순」을 보면서 그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정순은 누군가에게 속아 촬영당한 인물이 아닙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촬영에 응했습니다. 그러나 촬영을 허락한 것과 영상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려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당연한 구분을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의 선택을 먼저 따져보았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남았습니다.

    「정순」은 디지털 성범죄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피해 영상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가해자를 쫓는 수사 과정도 이야기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대신 영상이 퍼진 뒤 직장 동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가족과의 대화가 어긋나며, 평범했던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정순의 곁에서 지켜봅니다.

    정지혜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정순」은 2021년 제작돼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뒤, 2024년 4월 17일 국내 극장에서 정식 개봉했습니다. 김금순이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정순을, 조현우가 공장 동료 영수를, 윤금선아가 정순의 딸 유진을 연기했습니다. 출처: 서울독립영화제 「정순」 작품정보, 인디스페이스 「정순」 개봉 정보

    중년 여성 디지털 성범죄

     

    정순은 딸 유진과 함께 살며 식품공장에 다니는 중년 여성입니다. 공장에서는 나이 어린 반장의 눈치를 봐야 하고,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동료들과 어울리며 하루를 살아갑니다. 영화는 사건을 서둘러 꺼내지 않고 정순이 일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웃는 모습을 오래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사건이 언제 시작되는지 기다리게 될 만큼 전개가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정순의 평범한 시간을 충분히 보고 난 뒤에는 이 구성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순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로만 기억하지 않으려면, 피해를 겪기 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장에 들어온 영수는 정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관계를 이어갑니다. 영수는 두 사람의 은밀한 순간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이후 정순의 동의 없이 그 영상을 유포합니다. 촬영에 응했던 정순의 선택과 영수가 영상을 퍼뜨린 범죄는 같은 선에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의 관심은 가해자가 왜 영상을 퍼뜨렸는지보다 정순이 왜 촬영에 응했는지에 더 오래 머뭅니다. 나도 처음에는 정순의 행동을 이해해보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부터 잘못된 방향이었습니다.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대상은 정순의 친밀한 선택이 아니라 신뢰를 이용해 영상을 유포한 영수의 행동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미성년자나 젊은 여성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피해자의 나이에는 정해진 범위가 없습니다. 정지혜 감독은 관련 조사를 하면서 디지털 성범죄를 젊은 세대의 문제로만 여겼던 자신의 인식을 돌아봤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중년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나리오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씨네21 정지혜 감독 인터뷰

    다만 정순을 디지털 기기에 어두운 사람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피해를 본 이유는 스마트폰 사용에 서툴렀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했던 사람이 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했기 때문입니다. 중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면 영화가 경계한 또 다른 편견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공장의 2차 가해

     

    영상이 퍼진 뒤에도 공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갑니다. 기계가 움직이고 직원들은 정해진 일을 합니다. 달라진 것은 정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입니다. 대놓고 묻지 않더라도 수군거리는 말과 피하는 시선이 정순에게 닿습니다. 정순은 자신이 일하던 공간에서 어느 순간 구경거리가 됩니다.

    이 부분이 불편했던 이유는 주변 인물들이 특별히 잔인한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돌려보고 말을 보탠 사람들은 평소라면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법한 직장 동료들입니다.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영상을 확인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을 전하며, 또 다른 사람은 직접 괴롭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는 한 번의 수군거림도 반복해서 감당해야 하는 폭력이 됩니다. 출근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영상을 봤을지 의심해야 하고, 웃음소리가 들리면 자신을 두고 웃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게 됩니다. 가해자가 영상을 한 번 유포했더라도 그것을 보고 나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피해는 끝나지 않습니다.

    공장이라는 공간도 정순의 고통을 더 크게 만듭니다. 정순은 생계를 위해 그곳에 계속 나가야 하지만, 자신의 피해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합니다. 자리를 피하면 수입을 잃고, 버티면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와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겹치면서 정순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더 좁아집니다.

    딸 유진의 반응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유진은 엄마가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가 언제나 정순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딸에게도 자신의 삶과 관계가 있고, 엄마의 피해가 그 안으로 들어오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충돌합니다.

    처음에는 유진이 엄마의 마음보다 자신의 상황을 먼저 걱정하는 것처럼 보여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유진을 또 다른 가해자로만 묶는 것도 단순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서 피해자가 원하는 말을 바로 알아차리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해결해 주려는 마음이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덮을 수도 있습니다.

    「정순」은 가족이 피해자를 사랑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순에게 필요한 것은 대신 분노하고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꺼낼 수 있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피해자를 돕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을 빼앗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금순 연기와 피해 영상을 보여주지 않은 선택

     

    기존 글에는 주연배우의 이름이 김정순으로 잘못 적혀 있었지만, 정순을 연기한 배우는 김금순입니다. 김금순은 정순을 처음부터 상처받은 피해자의 얼굴로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영수와 가까워질 때는 오랜만에 설렘을 느끼는 사람처럼 웃고, 공장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면서도 자신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사건 이후의 변화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김금순은 감정을 설명하는 대사를 쏟아내기보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하는 모습과 굳어진 몸, 말을 삼키는 시간으로 정순의 상태를 표현합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일하려는 모습에서는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느껴졌습니다.

    특히 싱크대 앞에서 정순이 “엄마”를 부르는 장면은 쉽게 지나가기 어려웠습니다. 피해를 겪은 중년 여성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딸일 수 있다는 사실이 한마디 안에 담겨 있습니다. 정지혜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대사는 김금순 배우가 제안한 애드리브였습니다. 감독은 배우의 감정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카메라가 정순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딸 유진이 바라보는 정도의 거리에서 장면을 촬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씨네21 정지혜 감독 인터뷰

    피해 영상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지 않은 선택도 좋았습니다. 감독은 정순의 몸을 다시 볼거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앞부분에서 영수의 카메라 앞에 선 정순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중에는 그 노랫소리만 들려줍니다. 관객은 무엇이 퍼졌는지 알 수 있지만 정순의 피해 장면을 다시 소비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절제는 영화의 분명한 장점입니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작품이 피해 사실을 강하게 전달하려다 피해자의 몸과 공포를 반복해서 노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순」은 관객에게 충격적인 화면을 제공하는 대신, 영상이 유포된 뒤 정순에게 남은 시간과 시선을 보여줍니다.

     

    반면 감정을 절제한 연출 때문에 일부 장면은 정순의 마음에 충분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영화는 큰 반전이나 통쾌한 응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처벌받는 과정을 기대했다면 답답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의 책임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러나 실제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한 번의 신고와 처벌로 곧바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화가 쉽게 위로하지 않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 영상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확인할 수 없고, 한번 달라진 주변의 시선도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정순의 회복이 가해자의 처벌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운전 결말

     

    「정순」은 관객이 기다리는 방식으로 사건을 매듭짓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확실하게 응징받고, 피해 영상이 모두 삭제되며, 주변 사람들이 잘못을 깨닫는 결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지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할 당시 피해자를 보호하는 체계가 지금보다 부족했고, 취재 과정에서 이상적인 해결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현실적인 결말을 선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뉴시스 정지혜 감독 인터뷰

    이 선택은 답답하지만 거짓말처럼 희망적인 결말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품과 어울립니다. 정순이 겪은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영화는 상처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선언하지 않고 정순이 다시 자신의 삶을 움직이려는 순간을 바라봅니다.

    그 변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운전입니다. 영화 초반 정순은 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이동합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정순은 직접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고 운전대를 잡습니다.

    운전은 피해를 극복했다는 단순한 성공 표시가 아닙니다. 정순에게 벌어진 사건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됐고, 영상이 퍼지는 과정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정순이 어디로 갈지 스스로 결정하고 직접 운전한다는 것은 빼앗겼던 삶의 방향을 다시 잡으려는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감독 역시 늘 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정순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가 정순에게 갑작스러운 복수나 완벽한 치유를 주는 대신 작은 움직임을 건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씨네21 정지혜 감독 인터뷰

     

    나는 이 결말이 마냥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순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유포된 영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준 사람들이 모두 책임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순은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로 직장과 관계, 일상의 안전함을 잃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회복은 그 모든 것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가진 채로도 다음 방향을 자신이 선택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정순」을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가해자의 얼굴보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 성범죄를 비난하면서도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먼저 묻고, 조심하지 못했다는 말을 쉽게 덧붙입니다. 나도 그런 판단을 완전히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촬영에 동의한 것과 유포에 동의한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범죄의 원인은 아닙니다. 신뢰를 배신하고 영상을 퍼뜨린 행동, 그것을 호기심으로 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행동이 피해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준만큼은 흐려져서는 안 됩니다.

    「정순」은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전개가 느리고 통쾌한 해결도 없으며,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관객에게 대신 정리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왜 그랬을까”부터 묻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싶다면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정순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한 사람이었고, 피해를 겪은 뒤에도 피해자로만 남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운전대를 잡은 그의 모습을 보며 회복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자신이 정하는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