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 이 글에는 영화 「라라랜드」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라라랜드」를 봤을 때는 화려한 색감과 음악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미아의 노란 원피스와 세바스찬의 피아노, 언덕 위에서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보니 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사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고, 아이를 키우며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견디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은 설렘보다 생활에 가까워졌습니다. 서로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 됐지만,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의 마음을 묻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날도 생겼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사랑하면서도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저 자신에게 묻게 됐습니다. 저의 꿈은 무엇이었고, 제가 생각했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처음에 우리를 이어준 감정은 지금 어디에 남아 있을까. 너무 익숙해져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는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동안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왔습니다. 두 사람의 지나간 시간을 보면서 제 삶의 결말까지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라라랜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16년 뮤지컬 영화입니다. 엠마 스톤이 배우를 꿈꾸는 미아를, 라이언 고슬링이 자신의 재즈 클럽을 열고 싶은 세바스찬을 연기했습니다. 두 사람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각자의 꿈에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달라집니다. 출처: 라이언스게이트 「라라랜드」 공식 소개
꿈을 꾸던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영화는 로스앤젤레스의 꽉 막힌 도로에서 시작합니다. 차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노래하고 춤추면서 평범한 도로가 거대한 무대로 바뀝니다. 현실에서는 짜증이 날 만한 교통 체증도 영화 안에서는 꿈처럼 펼쳐집니다.
미아는 카페에서 일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닙니다. 감정을 잡고 연기를 시작하면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심사위원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다음 사람을 부릅니다. 세바스찬은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를 연주하고 싶지만 식당에서는 정해진 곡만 연주하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미아는 계속되는 거절에 지쳐 있고, 세바스찬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만 고집하다 안정적인 일자리조차 유지하지 못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합니다.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고 불쾌한 표정을 주고받으며, 파티에서 다시 만난 뒤에도 계속 부딪칩니다. 하지만 상대의 꿈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미아는 세바스찬에게 자신만의 재즈 클럽을 열라고 말하고,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남이 기회를 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직접 공연을 만들어보라고 합니다.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던 꿈을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도 좋았지만 서로가 포기하려던 일을 다시 해보게 만든다는 점이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혼자서는 그만두고 싶었던 일도 가까운 사람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한 번 더 해볼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만으로 버티기 어려웠던 시간
세바스찬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 친구 키스가 이끄는 밴드에 들어갑니다. 자신이 원했던 전통적인 재즈와는 다른 음악이지만 공연은 성공하고 많은 관객이 찾아옵니다. 미아는 오디션만 기다리던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쓴 1인극을 준비합니다.
두 사람 모두 꿈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데 함께하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세바스찬은 공연 일정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고, 미아는 대부분의 준비를 혼자 감당합니다.
저녁 식탁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장면은 노래와 춤이 가득한 장면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세바스찬은 미아를 위해 안정적인 일을 선택했다고 말합니다. 미아는 그런 선택을 부탁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서로를 생각했다고 믿지만 정작 상대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꿈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끝없이 기다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상대가 힘든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나를 혼자 남겨뒀다는 서운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 감정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결혼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질문이 줄어듭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기보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때로는 상대를 자세히 보지 않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우리는 사랑이었을까 묻게 된 것은 아닙니다.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다만 그 사랑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생활 속에 깊이 섞여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서로 외로운 순간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필요할 때 혼자였습니다
미아는 자신이 직접 쓴 1인극을 무대에 올립니다. 그러나 객석은 비어 있고 기대했던 반응도 얻지 못합니다. 공연을 보러 오기로 했던 세바스찬마저 밴드 촬영 일정 때문에 제시간에 오지 못합니다.
미아가 무너진 것은 공연 한 편이 실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거절당하고, 자신이 직접 만든 공연까지 외면받으면서 그동안 버텨온 마음이 한꺼번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던 세바스찬이 그 순간에는 없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도 가장 힘든 순간을 혼자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상대에게도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이해하는 것과 서운하지 않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나중에 이유를 들어도 그 순간 혼자였다는 기억은 남습니다.
저도 힘든 날에는 특별한 해결책보다 제 마음을 먼저 알아주기를 바랐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서 눈치채기를 기다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몰라준 것이 서운하면서도 제가 제대로 말한 적이 있는지 생각하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미아는 결국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 미아에게 새로운 오디션 연락이 오고, 세바스찬은 직접 찾아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많이 멀어졌지만 서로의 꿈을 믿었던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아갈 수는 없어도 상대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모습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미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미아는 마지막 오디션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에 관한 노래를 부릅니다. 엠마 스톤은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고 얼굴과 목소리만으로 미아가 겪은 거절과 아직 남아 있는 기대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미아가 갑자기 배우가 될 자격을 증명하는 순간이라기보다 더는 자신을 꾸미지 않고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잘 보이기 위해 준비한 표정이 아니라 실패하면서도 완전히 놓지 못했던 마음을 보여줍니다.
저도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 일 하나만 실패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끝까지 하지 못한 일과 잘못했던 선택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의 결과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동안 쌓인 시간이 모두 평가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엠마 스톤은 이 작품으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라라랜드」는 감독상, 촬영상, 음악상, 주제가상, 미술상까지 모두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출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라이언 고슬링도 세바스찬을 무조건 낭만적인 남자로만 연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지만 그만큼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면도 있습니다. 미아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자신이 그녀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배우는 완벽한 연인보다 서로 좋아하면서도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별의 책임을 어느 한 사람에게만 돌리기 어려웠습니다.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
영화는 미아와 세바스찬이 꿈을 이루려면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결말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은 사랑을 잃은 뒤 각자의 꿈을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두 사람이 정말 헤어져야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꿈 자체가 관계를 끝냈다기보다 서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마음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멀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세바스찬은 밴드에 들어간 이유를 혼자 결정했고, 미아는 공연에 실패한 뒤 자신의 마음을 닫았습니다. 서로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 상대의 의견은 빠져 있었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대화했다면 꿈과 관계를 함께 이어가는 다른 결말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랑과 꿈 가운데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두 사람의 이별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사랑을 지켰다고 자신의 삶을 버린 것도 아닙니다. 두 가지를 함께 이어가기 위해 계속 조정하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영화가 예술가의 성공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린 점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디션과 공연에 도전하지만 모두 미아처럼 결정적인 기회를 얻지는 못합니다. 미아의 오랜 실패는 마지막 오디션을 통해 빠르게 보상되고, 세바스찬도 자신이 꿈꾸던 클럽을 갖게 됩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꿈의 방향을 바꾸거나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선택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삶이 미아와 세바스찬의 삶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아팠던 이유
몇 년 후 미아는 배우로 성공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세바스찬도 자신이 원했던 재즈 클럽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바라던 곳에 도착했지만 더 이상 함께하지 않습니다.
미아는 남편과 우연히 세바스찬의 클럽에 들어갑니다. 무대에 있던 세바스찬과 눈이 마주치고,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자 두 사람이 헤어지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삶이 펼쳐집니다.
첫 만남은 다정하게 바뀌고 두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미아는 배우로 성공하고 세바스찬도 자신의 음악을 이어갑니다. 두 사람은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함께 세바스찬의 클럽을 방문합니다. 실제로 살지 못한 삶이 음악 안에서 완벽하게 이어집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왔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다시 이어지지 못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도 선택하지 않은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른 길을 골랐다면,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가족과 생활을 챙기는 동안 제 마음도 함께 살폈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에게 가장 설레던 때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처럼 자주 웃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너무 익숙해져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의 모습은 괜찮은 걸까. 영화 속 몇 분의 상상을 보며 제가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삶은 실제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계속 함께했다면 영화가 보여준 것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서로의 성공을 질투하거나 생활에 지쳐 더 크게 다퉜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상상은 두 사람이 실제로 놓쳐버린 완벽한 미래라기보다, 지나간 사랑을 가장 좋은 모습으로 간직한 장면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우면서도 더 아팠습니다.
오래된 관계를 돌아봤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를 바라보고 짧게 웃습니다. 다시 시작하자는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간 선택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서로가 지금의 자신이 되는 데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저는 아직 그 표정처럼 지나간 시간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고 산 것은 아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한집에 있으면서 마음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선택을 후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결혼과 육아, 생활을 이어오기 위해 선택한 일들도 모두 제 삶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미뤘다고 해서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처음 같은 설렘이 줄었다고 해서 함께한 시간이 사랑이 아니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관계를 그대로 두어도 되는지는 다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상대가 알아서 제 마음을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제가 먼저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고 싶은지 말입니다.
「라라랜드」의 결말은 이미 정해졌지만 저의 결말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선택을 바꿀 수는 없어도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는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뿐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서로가 너무 익숙해진 부부가 같이 봤으면 합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왜 헤어졌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꿈과 사랑에 대해서도 한 번쯤 묻게 될 것 같습니다.
'시네마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호프 갭, 남편의 외도, 이혼 결말) (0) | 2026.08.29 |
|---|---|
| 히든 피겨스 (NASA 흑인 여성, 직장 차별, 실화 이야기) (1) | 2026.08.27 |
| 부당거래 (가짜 범인, 권력의 설득, 진범 결말) (0) | 2026.08.27 |
| 소공녀 (이솜 미소, 집 없는 삶, 흰머리 결말) (1) | 2026.08.26 |
|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요리, 엄마의 밥상, 결말 해석) (0) | 2026.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