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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트

인턴 (70세 신입사원, 시니어 재취업, 줄스의 선택)

무비 러버 2025. 12. 3. 21:46

목차


    영화 「인턴」 공식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픽처스 제공

     

    ※ 이 글에는 영화 「인턴」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처음 며칠은 늘 긴장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새로운 곳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이름부터 업무 순서, 사용하는 프로그램까지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병원과 어린이집 보건교사, 보험업처럼 성격이 다른 일을 거치면서 저는 여러 번 경력자가 됐고, 그만큼 여러 번 신입으로 돌아갔습니다.

     

    젊었을 때는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넘긴 뒤부터는 질문 하나를 할 때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경력이 있는데 이것도 모르느냐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빨리 익혀야 한다는 마음이 앞설 때도 있었습니다.

     

    「인턴」의 벤을 보면서 이런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점잖고 따뜻한 할아버지가 젊은 대표를 도와주는 영화로 봤습니다. 그런데 여러 직장을 옮긴 뒤 다시 보니, 오랫동안 일했던 사람이 과거의 직함을 내려놓고 낯선 회사에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턴」은 낸시 마이어스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2015년 영화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는 은퇴 후 시니어 인턴이 된 벤 휘태커를, 앤 해서웨이는 온라인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줄스 오스틴을 연기했습니다. 출처: 영화 「인턴」 공식 예고편

    70살에 다시 출근했습니다

    벤은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뒤 은퇴했습니다. 아내와 사별한 후 여행도 하고 새로운 취미도 시작하지만 하루를 채울 만한 일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 온라인 패션 회사에서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합니다.

    면접을 보러 온 벤은 젊은 직원들이 가득한 회사에서 눈에 띕니다. 매일 정장을 입고 오래된 서류 가방을 들고 다니며, 필요한 내용은 수첩에 적습니다. 회사 직원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일하고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와 휴대전화로 처리합니다. 벤이 살아온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곳입니다.

    그렇다고 벤이 젊은 직원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높은 직책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모르는 기능은 동료에게 배우고, 회사에서 자신에게 맡길 일을 기다립니다.

    이 모습이 좋았습니다. 경력이 있다는 말이 새로운 직장에서도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도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프로그램을 배우고 그곳만의 업무 순서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사람을 상대해 본 경험은 남아 있었지만, 예전에 일했던 방식이 새 직장에서도 그대로 통하지는 않았습니다.

    벤은 자신이 잘했던 과거와 지금 맡은 인턴의 자리를 혼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직원들도 조금씩 벤을 편하게 대하기 시작합니다.

    괜히 아는 척하지 않는 벤

    벤은 회사 대표인 줄스의 인턴으로 배정되지만 처음에는 제대로 된 일을 받지 못합니다. 줄스는 회의를 옮겨 다니고 고객의 불만을 직접 확인하느라 늘 바쁩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인턴에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할지도 알지 못합니다.

    벤은 줄스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아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보기 싫어하면서도 아무도 손대지 않던 어수선한 책상을 정리하고, 곤란한 일이 생긴 동료를 자연스럽게 도와줍니다. 줄스의 운전기사가 술을 마신 것을 발견했을 때도 여러 사람 앞에서 문제를 키우지 않고 조용히 운전을 대신합니다.

    손수건 장면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벤은 손수건을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만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울 때 건넬 수도 있는 물건으로 생각합니다. 예전 글에서는 이것을 ‘어른의 품격’이라고 크게 해석했습니다. 다시 보니 벤은 그저 주변 사람이 곤란할 때 모른 척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직장에서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아집니다. 제가 겪어본 일이니 상대가 실수하기 전에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먼저 묻지 않았는데 계속 설명하면 도움보다 간섭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벤은 줄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사적인 문제를 캐묻지 않습니다. 충고할 수 있는 순간에도 말을 아끼고, 줄스가 실제로 의견을 구했을 때 자신의 생각을 전합니다. 벤이 불편한 선배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좋은 말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아무 말이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러 번 신입이 됐습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면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경력이 있으면 처음부터 잘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하고, 나이가 있으면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평소보다 서두르게 됩니다.

    저 역시 제 능력을 빨리 보여줘야 하나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급하게 움직이다 보면 다른 직원과 업무 순서가 엇갈리거나 평소에는 하지 않았을 실수가 생깁니다. 이전 직장에서 잘했던 방식이라고 해도 새 직장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근 일하게 된 병원에서도 어린 직원들이 업무와 프로그램을 빠르게 익히는 모습을 봤습니다. 분명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들과 속도를 겨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제가 익숙한 부분에서는 환자와 동료를 한 번 더 살피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벤도 젊은 직원보다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온라인 쇼핑몰의 운영 방식은 젊은 동료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벤은 사람들이 당황했을 때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않고, 지금 말을 해야 하는지 조금 기다려야 하는지를 판단합니다.

    오래 일했다고 무조건 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나이가 어리다고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은 벤이 젊은 직원들에게 과거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젊은 직원들도 벤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면서 서로 편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줄스는 왜 회사를 포기하려 했을까

    줄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켰지만 투자자들은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데려오라고 압박합니다. 회사가 너무 빨리 커져 줄스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줄스도 회사를 계속 이끌고 싶지만 가정까지 흔들리자 다른 사람에게 대표 자리를 넘겨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답답했습니다. 줄스가 회사에서 성공할수록 영화는 아이와 남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함께 보여줍니다. 남편이 육아를 맡고 있는데도 가정이 불안해진 책임은 줄스가 더 크게 짊어집니다.

    특히 남편의 외도를 줄스의 바쁜 생활과 연결하는 방식은 아쉬웠습니다. 영화가 남편의 행동을 옳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줄스는 자신이 회사 일에 매달렸기 때문에 남편이 외로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책임까지 찾으려 합니다. 남편이 외도를 선택한 것과 줄스가 회사를 운영하느라 바빴던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인턴」을 남성이 여성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에게 사람이 필요한 이야기로 설명했습니다.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것도 벤과 줄스가 나이와 성별을 넘어 친구가 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다만 벤이 줄스의 회사와 감정, 가정 문제까지 모두 정리해 주는 사람처럼 보이는 부분은 있습니다. 출처: 낸시 마이어스 감독 인터뷰

    벤 같은 사람만 다시 일할 수 있을까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데에는 벤의 성격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건강하고 단정하며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거부감이 없고, 사람들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며 좀처럼 실수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중장년층이 모두 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경력이 많아도 나이 때문에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제한될 수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체력과 근무시간, 급여와 고용 안정성도 함께 따져야 합니다.

    영화는 벤이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젊은 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보기에는 따뜻하지만 현실의 재취업 과정은 이처럼 순조롭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다시 일할 기회를 얻으려면 벤처럼 거의 완벽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젊은 직원들이 벤에게 배우는 모습은 많이 나오지만 벤이 그들에게 배우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짧게 다뤄집니다. 실제 직장에서는 양쪽 모두 배웁니다. 저는 젊은 직원들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과 빠르게 업무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배우고, 제가 경험했던 상황이 도움이 될 때는 제 의견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한쪽은 가르치고 다른 쪽은 배우기만 하는 관계보다 이것이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편안했던 두 사람의 관계

    로버트 드 니로는 벤을 교훈적인 말만 하는 인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영화 속 벤은 지나치게 좋은 사람으로 설정됐지만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 덕분에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앤 해서웨이는 바쁘게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줄스와 혼자 있을 때 불안해하는 줄스를 다르게 보여줍니다. 회사에서는 계속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가족과 투자자 앞에서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흔들립니다. 벤과 단둘이 있을 때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꺼내는 모습에서는 줄스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나이와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이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편안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벤은 줄스 대신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줄스가 자신의 선택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줍니다.

    다시 시작한다고 처음부터는 아닙니다

    결말에서 줄스는 외부 CEO를 영입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회사를 계속 운영하기로 합니다. 그 결정을 벤에게 알리러 갔다가 공원에서 태극권을 하는 벤을 발견하고 옆에서 동작을 따라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경험 많은 벤의 방식이 옳았다는 결론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늘 빠르게 움직이던 줄스가 잠시 벤의 속도에 맞춰보고, 벤도 자신의 답을 말하기보다 줄스가 숨을 돌릴 시간을 줍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잠깐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장면이라서 좋았습니다.

    40대 중반을 넘어 다시 배우는 자리에 서보니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할 때도 있지만 부담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예전에 해본 일이니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모르는 것을 물으면 그동안의 경험까지 부족하게 보일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업무를 배운다고 해서 그동안 일하며 겪었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턴」은 현실보다 따뜻합니다. 벤은 지나치게 완벽하고 중장년 재취업의 어려움도 깊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줄스의 가정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모두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과거의 직함을 앞세우지 않고 새로운 회사의 방식을 배우는 벤의 모습은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의 저는 무조건 빨라지려고 애쓰기보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일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순간에는 나서되 먼저 정답을 알려주려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40대 이후 재취업을 준비하거나 경력을 가지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야 하는 분들이 이 영화를 한 번 봤으면 합니다. 경력직으로 지원했더라도 새로운 조직에서는 다시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전보다 적응이 더디다고 느끼거나 과거의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마음이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벤처럼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필요는 없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는 일과 지금까지 해온 일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신입이 된다고 해서 살아온 시간까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만난 사람들과 해결했던 문제, 실수한 뒤 다시 배운 과정은 새로운 자리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습니다. 「인턴」은 재취업의 현실을 다소 따뜻하게 그린 영화지만,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다독여주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