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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주요 장면과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어려웠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기보다 긴 추격전을 함께 달린 것처럼 정신이 멍했습니다. 앞에서 자동차가 뒤집히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마다 몸에 힘이 들어갔고, 엔진음이 멈춘 뒤에야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액션의 속도에 압도돼 인물들의 관계를 자세히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퓨리오사가 왜 임모탄 조를 배신했는지, 맥스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는지를 따라갔습니다. 세 번째에는 차량의 모양과 워보이들의 행동, 물과 모유를 통제하는 시타델의 구조처럼 처음에는 놓쳤던 장면들이 보였습니다.
같은 도로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단순한 이야기인데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달랐습니다. 복잡한 대사로 세계관을 설명하지 않아도 자동차와 의상, 인물의 몸에 남은 흔적이 그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빠르게 달리는 영화지만 화면을 자세히 볼수록 그 안에 촘촘한 설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자원이 고갈된 황무지에서 독재자 임모탄 조의 지배를 받던 퓨리오사가 그의 다섯 아내를 데리고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톰 하디가 맥스 로카탄스키를, 샤를리즈 테론이 퓨리오사를 연기했습니다. 니컬러스 홀트는 임모탄 조를 숭배하는 워보이 눅스를, 휴 키스번은 시타델을 지배하는 임모탄 조를 맡았습니다.
모래폭풍 추격전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 중 하나는 퓨리오사의 전투 트럭과 추격 차량들이 거대한 모래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입니다. 사막을 집어삼킬 듯한 먼지 기둥과 번개, 불길이 한 화면에 겹치면서 현실의 공간이 갑자기 다른 세계로 바뀝니다.
맥스는 그때까지 워보이들에게 붙잡힌 포로였습니다. 차량 앞에 묶인 채 눅스에게 피를 공급하는 ‘피주머니’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자유를 되찾기 위해 달리는 영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 취급되는 인물입니다. 맥스가 무엇을 계획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차량은 그대로 모래폭풍 안으로 돌진합니다.
눅스는 임모탄 조에게 인정받고 발할라에 가겠다며 폭풍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워보이들이 어떤 믿음 속에서 길러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워보이들은 병든 몸으로 오래 살기 어렵고, 임모탄 조를 위해 장렬하게 죽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배웁니다. 그래서 그들의 무모한 행동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조가 만들어놓은 지배 방식의 결과로 보였습니다.
모래폭풍 장면이 강렬했던 이유는 크기만 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동차의 움직임과 음악, 색의 변화가 정확히 맞물립니다. 주황색 사막을 달리던 차량들이 검붉은 폭풍 속으로 들어가고, 번개가 치는 순간 차량이 공중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무엇이 실제 촬영이고 무엇이 시각효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기존 글에서는 자동차를 실제로 달리고 뒤집고 폭발시켰기 때문에 거의 모든 액션이 컴퓨터그래픽 없이 촬영된 것처럼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실제 차량과 스턴트를 중요한 기반으로 사용했지만 모래폭풍, 배경 확장, 안전장치 제거, 색 보정 등에는 광범위한 시각효과가 적용됐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모두 실제’가 아니라 ‘실제 차량과 스턴트를 중심에 두고 시각효과를 결합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은 자동차가 먼지 속에서 뒤집히는 장면이라면 가능한 한 실제처럼 보여야 관객이 상황을 믿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작진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을 만들고, 스턴트가 진행되기 전에 촬영 구도와 차량의 위치를 반복해서 점검했습니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실물 촬영과 정교한 후반작업이 함께 만든 결과입니다. 출처: The New Yorker 조지 밀러 인터뷰
저는 세 번을 봐도 모래폭풍 장면에서는 긴장했습니다. 결말을 알고 있어도 차량이 폭풍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움직임과 눅스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표정이 주는 힘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줄거리를 확인하는 장면이 아니라 화면과 소리를 몸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장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퓨리오사 탈출
두 번째로 기억에 남은 것은 퓨리오사가 임모탄 조의 다섯 아내를 전투 트럭에 숨겨 탈출하는 과정입니다. 영화는 퓨리오사가 배신을 준비하는 모습을 길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연료를 가지러 가는 평범한 임무처럼 출발한 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녀의 선택이 드러납니다.
퓨리오사가 구하려는 여성들은 임모탄 조에게 한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조는 자신의 후계자를 낳게 할 목적으로 이들을 통제합니다. 이들이 머물던 공간에는 자신들은 물건이 아니라는 의미의 문구가 남아 있습니다. 탈출은 더 나은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로 살기를 거부하는 선택입니다.
퓨리오사는 이들을 보호하지만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지는 않습니다. 여성들은 위험한 순간마다 트럭을 고치고, 길을 살피고, 맥스와 퓨리오사를 돕습니다. 임신한 앙하라 드는 자신의 몸을 방패로 이용해 임모탄 조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가 이들을 단순히 구출을 기다리는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중심인 퓨리오사의 과거와 감정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어린 시절 ‘많은 어머니의 녹색 땅’에서 납치됐다는 사실과 그곳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목적은 나오지만, 시타델에서 어떻게 성장해 임모탄 조의 사령관이 됐는지는 2015년 영화 안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후 공개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그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분노의 도로」만 봤을 때는 인물의 과거가 비어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퓨리오사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이유를 이념적인 구호에서 먼저 정한 것이 아니라 서사의 필요에서 찾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임모탄 조가 뒤쫓는 대상이 사람이 되고, 그 대상이 조에게 붙잡혀 있던 아내들이라면 이들을 탈출시키는 인물은 여성이어야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창작 과정이며, 영화가 퓨리오사를 통해 보여주는 해방의 의미에 관한 부분은 저의 해석입니다. 출처: TIME 조지 밀러 인터뷰
퓨리오사의 선택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녹색의 땅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찾아온 고향이 오염된 늪으로 변했고, 살아남은 부발리니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퓨리오사는 사막에 주저앉아 절규합니다. 영화에서 계속 강한 모습만 보여주던 인물이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럼에도 퓨리오사는 다시 일어납니다. 찾던 낙원이 사라졌다고 해서 임모탄 조의 지배 아래로 조용히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목적지는 다른 곳에 존재하는 이상향이 아니라 자신이 탈출해 나온 시타델이 됩니다. 그곳에는 물과 농작물이 있고, 임모탄 조의 병력은 퓨리오사를 쫓아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방향을 돌려 지배자의 자리를 빼앗으러 간다는 선택이 이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맥스의 선택
영화 제목에는 맥스의 이름이 들어가지만 이야기의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은 퓨리오사입니다. 그럼에도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맥스였습니다. 맥스는 처음부터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영웅이 아닙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으며, 머릿속에서는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환영이 반복됩니다.
퓨리오사 일행과 처음 만났을 때도 맥스는 협력보다 전투를 선택합니다. 속박에서 벗어난 뒤 여성들에게 총을 겨누고 전투 트럭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러나 트럭의 시동을 유지하는 장치를 알지 못해 혼자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서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은 차에 타게 된 것입니다.
이 시작이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정의로운 맥스가 여성들을 돕는 구조였다면 퓨리오사의 이야기는 맥스의 영웅담 안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맥스는 이미 탈출을 실행한 퓨리오사와 여성들의 여정에 합류합니다. 그는 이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대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역할을 나누는 동료로 받아들입니다.
맥스의 변화는 말보다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이 가진 총알과 무기를 건네고, 퓨리오사의 어깨를 받침대로 이용해 정확한 사격을 돕습니다. 후반에는 사막을 계속 건너자는 사람들에게 시타델로 돌아가자고 제안합니다. 희망이 사라진 뒤 무작정 도망치는 대신 적이 비운 근거지를 차지하자는 판단입니다.
마지막 추격전에서 퓨리오사가 크게 다쳤을 때 맥스는 자신의 피를 수혈합니다. 영화 초반 그는 의지와 상관없이 눅스에게 피를 공급하는 ‘피주머니’였습니다. 결말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피를 나누어 퓨리오사를 살립니다. 같은 행위가 앞에서는 착취였고 마지막에는 선택과 연대가 됩니다.
맥스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영화 초반 정체성을 빼앗기고 물건처럼 끌려다녔습니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이름조차 말하지 않던 인물이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나눈 뒤 이름을 밝힙니다. 저는 이 장면을 맥스가 세상을 완전히 믿게 됐다는 뜻보다는, 적어도 한 사람과 다시 연결될 수 있게 됐다는 변화로 받아들였습니다.
시타델로 돌아온 뒤 맥스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자리에 남지 않습니다. 퓨리오사와 여성들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확인한 뒤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권력을 차지하거나 구원자로 인정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퓨리오사의 싸움이 끝날 수 있도록 도운 뒤 자신의 길로 돌아가는 선택이 맥스다운 결말이라고 느꼈습니다.
톰 하디는 대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시선과 몸의 움직임으로 맥스의 경계심을 표현합니다. 샤를리즈 테론의 퓨리오사가 분명한 목적과 결단력으로 영화를 이끈다면, 톰 하디의 맥스는 살아남는 것밖에 몰랐던 사람이 다시 타인을 돕게 되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퓨리오사가 서사의 중심이라는 사실과 맥스가 제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라는 감상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세 번 본 액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약 2시간 동안 추격과 전투를 이어갑니다. 줄거리만 정리하면 시타델에서 탈출하고, 목적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시타델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구조인데도 세 번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액션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반 추격은 퓨리오사의 배신이 드러나는 과정이고, 모래폭풍은 맥스와 눅스를 퓨리오사에게 연결합니다. 협곡 전투는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이며, 마지막 귀환은 도망치던 사람들이 공격하는 사람들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모든 액션에는 인물의 목적과 관계 변화가 들어 있습니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불을 뿜는 기타와 폭발, 차량 전복처럼 큰 이미지가 먼저 보였습니다. 두 번째에는 눅스가 임모탄 조의 인정을 갈망하는 이유와 케이퍼블을 만나 달라지는 과정이 들어왔습니다. 세 번째에는 맥스와 퓨리오사가 긴 설명 없이도 점차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는 흐름이 보였습니다.
제작진은 대사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설계했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분노의 도로」의 첫 번째 본격적인 설계가 전통적인 각본보다 스토리보드에 가까웠으며, 약 3,500개의 패널로 장면과 인물의 위치를 구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숫자는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제작 규모이며 제가 추산한 값은 아닙니다. 출처: The New Yorker 조지 밀러 인터뷰
편집도 액션의 속도만 높이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차량이 빠르게 움직여도 인물과 목적물이 화면의 중심 부근에 배치돼 시선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컷이 짧게 바뀌는데도 어느 차량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추격전이 혼란스럽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영화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 미술상, 분장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액션 연출뿐 아니라 의상과 공간, 편집과 소리가 함께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출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제88회 시상식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인물의 과거와 세계의 역사에 관한 설명이 적어 첫 관람에서는 왜 이들이 싸우는지 놓치기 쉽습니다. 임모탄 조가 물을 독점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구조는 선명하지만, 주변 세력인 가스타운과 무기 농장의 관계는 빠르게 지나갑니다. 다섯 아내도 탈출이라는 공통된 목적은 분명하지만 각자의 성격과 변화를 충분히 보여줄 시간은 부족합니다.
액션의 강도가 거의 쉬지 않고 유지되는 것도 관객에 따라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속도에 압도됐지만, 인물의 대화와 감정이 천천히 쌓이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야기가 단순하고 정신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액션이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전부 해결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세 번의 관람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극장의 소리와 속도에 압도됐고, 다시 볼 때는 퓨리오사의 탈출과 맥스의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낙원을 찾아 멀리 떠나는 것보다 자신들이 도망쳐 나온 곳으로 돌아가 바꾸는 결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퓨리오사는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지 못하지만 시타델의 사람들에게 물을 돌려줄 기회를 얻습니다. 맥스는 모든 상처를 극복하거나 새로운 지도자가 되지 않지만 다시 누군가를 믿고 도울 수 있게 됩니다. 눅스는 임모탄 조를 위해 죽는 대신 동료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합니다. 같은 추격전 안에서 세 인물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합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단순히 자동차가 많이 부서지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소유물로 살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탈출하고, 사라진 희망 앞에서 방향을 돌려 자신들을 억압했던 장소로 돌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맥스였지만, 그의 선택은 퓨리오사의 결단과 여성들의 탈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바로 일어나기 어려웠던 첫 관람의 감각은 세 번째 관람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말을 모두 아는데도 모래폭풍과 마지막 추격전에서는 다시 긴장했습니다.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관객까지 속도와 움직임으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다시 볼수록 완성도가 보이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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