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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노트

우리들 (학교 따돌림, 선과 지아, 우정 결말)

무비 러버 2026. 8. 25. 11:46

목차


    영화 「우리들」 공식 포스터 / 배급사 엣나인필름 / 출처 네이버 영화

     

    ※ 이 글에는 영화 「우리들」의 주요 장면과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사이버폭력을 다룬 영상을 보았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엄마, 아빠와 딸이 함께 밥을 먹는 동안 딸아이의 핸드폰 알람이 계속 울렸고, 아빠는 우리 딸이 인기가 많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갑자기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에 쌓이고 있던 것은 반가운 연락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SNS에 딸을 비방하는 글을 올렸고,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가세하면서 어느 순간 많은 친구들이 그 아이를 욕하고 있었습니다. 아빠에게는 계속 울리는 알림이 딸의 즐거운 학교생활처럼 보였지만, 정작 아이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아이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 조금만 더 일찍 물어보고, 너무 늦기 전에 아이를 지켜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아이들의 모습도 전보다 세심하게 보게 됐습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작은 것까지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아들은 딸아이보다 과묵합니다. 물어봐도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제가 몰랐던 일을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듣거나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들은 평소 친구들과 몇 시간씩 통화하며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전화 한 통 없이 혼자 게임만 하고 있었습니다. 별일 아닌 모습일 수 있는데도 괜히 걱정됐습니다. 친구와 다툰 것은 아닌지, 속상한 일이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아니요. 아무 일 없는데요?”라고 답하고 다시 게임을 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남았습니다. 계속 물으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중요한 신호를 놓칠 것 같았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일을 알 수는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만큼은 지나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화 「우리들」을 보면서 그날 혼자 게임하던 아들의 뒷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선과 지아도 자신의 하루를 어른들에게 전부 설명하지 않습니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이들의 따돌림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아이들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초등학교 4학년 선과 전학생 지아의 만남을 그린 성장영화입니다. 선 역은 최수인, 지아 역은 설혜인, 보라 역은 이서연이 맡았습니다. 작품은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습니다. 출처: 영화 「우리들」 베를린영화제 초청

    혼자 남겨진 선

    영화는 피구 편을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함께 경기하고 있지만 선은 좀처럼 어느 편에도 선택되지 못합니다. 결국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선의 얼굴에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는 체념이 묻어 있습니다.

    곧이어 선은 보라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고 생각해 약속 장소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보라가 알려준 주소는 거짓이었습니다. 선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로 화를 내지 못합니다. 화를 낼 상대조차 곁에 없다는 사실이 더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선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척하고, 동생 윤을 돌보며 평소처럼 생활합니다. 큰 소리로 울거나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선의 외로움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앞서 보았던 영상이 생각났습니다. 어른은 눈앞에 나타난 행동만 보고 아이의 하루를 짐작하기 쉽습니다. 휴대전화가 계속 울리면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평소처럼 밥을 먹고 게임을 하면 별일 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선처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견디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여름방학에 만난 지아

    방학식 날 혼자 교실을 청소하던 선은 전학생 지아를 만납니다. 두 아이는 학교라는 집단에서 벗어나자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함께 떡볶이를 먹고 집을 오가며 놀고,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줍니다.

    선에게 지아는 자신을 먼저 선택해 준 친구였습니다. 늘 다른 아이들의 뒤에 서 있던 선에게 둘만의 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아 역시 부모의 이혼으로 생긴 외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선과 비교하면 지아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지아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곁을 지켜줄 사람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가까워지는 장면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집에서 동생과 함께 놀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더 진짜 친구들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른에게는 평범한 하루지만 아이에게는 앞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윤가은 감독은 이 작품이 어린 시절 겪었던 격렬한 친구 관계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이 아닌 타인을 처음으로 깊이 좋아하고, 그 관계가 틀어졌을 때 생기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씨네 21 「우리들」 작품 이야기

     

    저는 이 여름 장면들이 따뜻하면서도 불안했습니다. 두 아이의 관계가 너무 소중해 보였기 때문에 학교가 다시 시작된 뒤에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둘만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차이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학과 함께 달라진 관계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자 선과 지아 사이에 보라가 들어옵니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보라는 지아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지아는 선과 함께 있을 때보다 보라의 무리에 들어갔을 때 더 많은 친구와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선은 지아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지아는 선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지아가 선에게 휴대전화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둘 사이의 생활환경 차이도 드러납니다. 둘만 놀 때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조건이 집단 안에서는 선을 밀어내는 이유로 이용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지아만 나쁜 아이로 만들지 않습니다. 지아도 보라의 곁에서 완전히 안전하지 않습니다. 성적과 인기, 친구들의 반응에 따라 아이들 사이의 중심은 계속 바뀝니다. 보라가 지아를 받아들였다가 다시 밀어내는 과정에서 지아 역시 혼자가 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선과 지아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가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만 털어놓았던 집안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 앞에서 꺼냅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말이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공격하는 무기로 바뀝니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쉽게 정할 수 없었습니다. 선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지아가 야속하지만, 지아가 왜 보라의 곁을 놓지 못하는지도 이해됐습니다. 지아가 다시 외면당했을 때 선이 보이는 행동 역시 착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는 한 명을 가해자로 지목한 뒤 사건을 정리하는 대신, 관계 속에서 역할이 바뀌는 순간을 끝까지 따라갑니다.

    어른들은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선의 엄마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일을 하면서도 가족을 챙기고 선의 친구에게 음식을 내어줍니다. 하지만 선이 학교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담임교사도 아이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보지만, 이미 쌓여버린 감정까지 들여다보지는 못합니다.

    그렇다고 영화를 보면서 어른들이 무관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는 생계를 꾸려야 하고, 교사는 교실의 많은 아이를 동시에 살펴야 합니다. 선과 지아 역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어른과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아이 사이에 빈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불안했습니다. 아이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캐물을 수도 없습니다. 아이의 휴대전화를 몰래 확인하거나 친구 관계에 바로 개입하는 것이 언제나 정답인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한 번에 모든 사실을 알아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 있어?”라는 질문에 아이가 아니라고 대답했다면 당장은 기다리되, 언제라도 다시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입을 열었을 때 판단부터 하거나 사소한 일로 넘기지 않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부모에게 구체적인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아이의 세계를 어른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친구와 잠깐 다퉜다고 생각했던 일이 아이에게는 학교에 가기 싫을 만큼 큰 상처일 수 있습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 아이들 같았다

    「우리들」의 가장 큰 힘은 아역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선과 지아는 감정을 설명하는 대사를 길게 하지 않습니다. 상대의 눈을 피하고, 목소리가 작아지고, 괜히 다른 물건을 만지는 행동만으로도 마음의 변화가 전달됩니다. 최수인은 선을 마냥 불쌍한 아이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친구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질투하고, 자신을 외면한 지아에게 상처를 돌려줍니다. 설혜인이 연기한 지아도 차갑게 돌변한 아이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보라와 어울리면서 계속 선을 의식하는 눈빛에 미안함과 불안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카메라도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선의 눈높이에서 교실과 골목, 집을 바라봅니다. 어른에게는 작아 보이는 교실이 선에게는 빠져나가기 어려운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큰 사건이나 자극적인 음악 없이도 긴장되는 이유는 관객이 선의 자리에 가까이 머물기 때문입니다.

    “그럼 언제 놀아?”가 남긴 결말

    후반부에 선의 동생 윤은 친구와 싸워 얼굴에 상처를 입습니다. 선은 맞고만 있지 말고 다시 때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윤은 서로 계속 때리면 언제 노느냐고 묻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들에게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친구가 아들을 때려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고, 상대 아이의 부모님도 연락해 사과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걱정이 컸습니다. 아이가 받은 상처도 마음에 걸렸고, 두 아이가 한동안은 함께 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들은 점심시간에 그 친구와 다시 놀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조금 놀랐습니다. 어른인 저는 누가 잘못했고 어떻게 사과했는지, 앞으로 두 아이를 어떻게 떨어뜨려 놓아야 할지부터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친구와 다시 놀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가 친구를 때린 일을 단순한 장난으로 넘겨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고,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줘야 합니다. 선생님과 상대 부모님의 연락과 사과도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다만 그 일이 해결된 뒤에도 아이가 상대를 계속 미워해야 한다고 어른이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윤의 질문이 더욱 마음에 남았습니다. 선과 지아도 처음에는 함께 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받은 상처를 돌려주기 시작하면서 두 아이는 서로의 비밀을 공격할 방법부터 찾게 됩니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동안, 정작 두 사람이 원했던 우정은 점점 멀어집니다.

    마지막 피구 경기에서 지아는 선을 향해 공을 던집니다. 다른 아이들이 지아가 선을 밟았다고 몰아가지만 선은 지아가 선을 밟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선은 지아와 곧바로 화해하거나 다시 단짝이 되자고 손을 내밀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본 사실을 말하며 모두가 지아를 공격하는 상황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좋았습니다. 한 번 틀어진 관계가 짧은 사과만으로 예전처럼 돌아간다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의 말은 모든 상처를 없애는 화해가 아니라, 더 이상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아이의 곁에 있고 싶다

    「우리들」은 학교폭력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잘못한 아이가 벌을 받고 피해자가 사과받는 결말을 기대한다면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친구 관계가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로 정확히 나뉘지는 않는다는 점을 세심하게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세계를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그리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좋아하는 만큼 질투하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친구를 밀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잘못을 깨닫고 다시 손을 내밀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떠올렸던 영상 속 아빠도 딸의 고통을 일부러 외면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휴대전화가 계속 울리는 모습을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고 있어도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을 보고 아이의 모든 비밀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침묵을 너무 쉽게 지나치지 않고 싶어 졌습니다. 아들이 “아무 일 없는데요?”라고 말하면 그 답을 존중하되, 나중에라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상처를 막아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서 상처받고 관계를 배우는 과정까지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너무 늦지 않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게 「우리들」은 아이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를 넘어, 아이의 말뿐 아니라 달라진 표정과 조용해진 하루까지 바라보게 만든 작품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