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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요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옥분을 처음 봤을 때 웃기기보다는 조금 긴장이 됐습니다. 카메라와 수첩을 들고 구청으로 들어와 잘못된 점을 하나씩 따지는 모습을 보니 병원에서 민원을 응대하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이 다시 찾아오면 말을 듣기도 전에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처리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기다리는 환자도 많은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영화 초반에는 옥분보다 구청 직원들의 입장이 먼저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동네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다니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가장 아픈 이야기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까. 그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민원왕 나옥분은 왜 멈추지 않았을까
나옥분은 8천 건에 가까운 민원을 제기해 구청 직원들 사이에서 ‘도깨비 할머니’라고 불립니다. 직원들은 옥분이 나타나기만 해도 긴장하고, 무슨 말을 할지 듣기 전부터 귀찮아합니다.
병원 고객만족팀에서 일했던 저로서는 직원들의 반응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같은 환자나 보호자가 다시 찾아오면 긴장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쁜 날에는 요점부터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민원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기보다 빨리 처리해야 하는 업무처럼 받아들였던 적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다른 일을 모두 미룰 수도 없었고, 해줄 수 없는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었습니다. 민원 응대 업무를 해보지 않았다면 구청 직원들이 너무 불친절하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니 직원들이 옥분을 ‘민원왕’이나 ‘도깨비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별명이 붙고 나면 옥분이 무슨 말을 해도 또 시작한다는 반응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확인해 볼 만한 문제까지 귀찮은 민원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옥분이 지적한 내용을 보면 동네의 잘못된 간판이나 위험한 시설처럼 누군가는 확인해야 할 문제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편해도 그냥 지나갔지만 옥분은 사진을 찍고 기록해 구청까지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잘못된 것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표현이 거칠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제기한 문제까지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민원을 제기한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기 전에 속으로 판단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당시에는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조금 더 들어봤어야 했던 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옥분이 영어를 배운 이유
옥분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민재를 계속 따라다닙니다. 처음에는 미국에 사는 동생과 이야기하고 싶어서 영어를 배우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친구 정심의 상태가 나빠지고 옥분이 숨겨왔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알게 됩니다. 미국으로 간 동생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정심을 대신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제목인 ‘아이 캔 스피크’도 처음과 다르게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이제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말하겠다”는 뜻처럼 느껴졌습니다.
옥분은 동네에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이 보이면 사진을 찍고 구청에 찾아가 따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가장 큰 상처는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묻거나, 옥분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를 다시 봤을 때는 옥분이 동네 민원을 계속 제기했던 이유도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냥 참고 지나가는 불편이라도 대신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에서 직접 설명한 내용은 아니고, 제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부분입니다.
민재의 태도가 이해됐던 이유
민재는 옥분의 사정을 알기 전까지 특별히 따뜻한 공무원은 아니었습니다. 규정에 따라 민원을 처리하고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처음에는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민원 업무를 해본 제 눈에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민원을 응대할 때는 공감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줄 수 없는 일을 해주겠다고 말할 수는 없고, 한 사람의 요구 때문에 다른 업무를 모두 미룰 수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민재의 원칙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민재는 옥분의 민원 내용만 처리했을 뿐, 옥분이 왜 그렇게 동네 일에 매달리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옥분 역시 민재를 자신의 말을 끊는 공무원으로만 봤습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것은 영어 공부를 함께하고 밥을 먹으면서부터였습니다. 서로의 가족과 생활을 알게 되니 보이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민재에게 옥분은 더 이상 귀찮은 민원인이 아니었고, 옥분에게도 민재는 차갑기만 한 공무원이 아니었습니다.
민재가 옥분을 대신해 증언하지 않았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민재는 옥분이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영어 연습을 도와주고 옆에서 힘을 보태줬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나 보호자의 요구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았다는 기분과, 누군가 끝까지 들어줬다는 기분은 분명히 다릅니다. 민재가 옥분에게 해준 일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염혜란 배우 때문에 더 많이 울었던 장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은 옥분과 진주댁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미국 의회 증언 장면도 가슴이 아팠지만, 저는 두 친구가 마주 앉아 우는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진주댁이 옥분의 과거를 알고 난 뒤 일부러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저도 오해했습니다. 혹시 가장 가까운 친구마저 옥분의 과거를 알고 불편해진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진주댁은 옥분의 과거가 싫어서 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는데 자신에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서운했던 것입니다. 옥분이 그 힘든 일을 혼자 견디고 있었다는 사실도 너무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진주댁이 미리 이야기해 줬다면 어떻게든 도왔을 것 아니냐고 우는 장면에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친구를 원망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더 일찍 알아주지 못한 자신이 미안해서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염혜란 배우는 이 장면에서 처음부터 크게 울지 않습니다. 서운했던 마음을 먼저 쏟아내다가 옥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서 점점 목소리가 떨립니다. 눈물과 콧물을 닦을 정신도 없이 우는 모습이 정말 가까운 친구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쁘게 우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너무 속상해서 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진주댁의 말을 들으면서 같이 울게 됐습니다. 알고 있는 장면인데도 다시 보면 또 눈물이 납니다.
시장 사람들이 옥분의 미국 방문을 위해 내복과 음식, 한약 등을 챙겨준 장면도 좋았습니다. 대단한 위로의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각자가 줄 수 있는 것을 하나씩 보냈습니다. 오히려 그런 평범한 물건들에서 옥분을 응원하는 마음이 더 잘 느껴졌습니다.
나문희 선생님의 눈물이 가슴 아팠던 이유
나문희 선생님이 옥분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우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본군에 끌려가 견디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것도 모자라 살아 돌아온 뒤에는 가족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옥분의 어머니는 딸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옥분의 과거가 남동생의 앞길을 막을까 걱정했고, 가족들마저 옥분을 외면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오히려 피해자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옥분은 어머니에게 거창한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쌍한 내 새끼, 욕봤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끝내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는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나문희 선생님은 이 장면에서 큰 동작을 하거나 긴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표정이 무너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옥분이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금이나마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든 옥분이 어머니를 부르며 우는 모습은 그 순간만큼은 어린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부모에게 위로받지 못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문희 선생님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장면이 이렇게까지 가슴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억지로 울리려고 만든 장면이라는 생각보다, 실제 옥분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염혜란 배우와 나문희 선생님이 함께 우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연기를 따로 생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옥분이 겨우 꺼낸 이야기를 진주댁이 외면하지 않고 같이 울어줬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옥분이 어머니에게 받지 못했던 위로를 오랜 친구에게서 뒤늦게 받은 것 같았습니다.
증언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
옥분이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지만 보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이야기했는데도 사람들이 바로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옥분은 결국 몸에 남은 상처까지 보여줘야 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해명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이 정말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몸에 남은 상처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몸에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옥분의 말은 믿어주지 않았을까.
증언이 끝난 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실제 피해 생존자들의 아픔이 한 번의 증언과 박수로 해결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피해를 밝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증언한 뒤에도 상처와 편견은 계속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는 사실보다 옥분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는지를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시선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도 옥분이 “아이 캔 스피크”라고 외치는 순간에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통해 말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나문희 선생님의 영어 발음이 얼마나 완벽한지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옥분이 한 문장씩 힘들게 이어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평생 숨겨온 이야기를 드디어 세상에 꺼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라는 표현에 대하여
‘위안부’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했던 사람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일본군이 만든 제도 안에서 성폭력과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입니다.
‘성노예’라는 말은 당시 제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피해 생존자가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을 지칭할 때는 당사자의 마음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글에서는 누가 저지른 일인지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또는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더라도 그분들이 겪은 고통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는 옥분의 증언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한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피해자들의 삶을 ‘우리 민족의 한’이라는 말로만 묶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피해 생존자들은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마다 이름과 가족이 있었고, 피해 이후에도 각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분노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분들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모진 세월을 버티며 살아주신 분들을 꼭 안아드리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불쌍하다는 마음에서 끝나기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증언한 용기와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 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책임 인정과 진정한 사죄가 모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일본이 사과했는지 안 했는지만 따지기보다 책임을 부정하거나 역사를 축소하려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그 순간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계속 기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난 뒤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난 뒤에는 미국 의회에서 증언하던 옥분만 생각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청 책상 앞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하던 옥분과 친구의 아픔을 너무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며 울던 진주댁도 함께 생각났습니다.
민원을 많이 넣는 사람이나 직원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나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전부 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사람보다 민원을 먼저 봤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모든 민원을 원하는 대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투나 반복되는 방문만 보고 그 사람이 하는 말까지 미리 판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옥분은 영어를 배운 뒤 갑자기 할 말이 생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해야 할 말도 많았습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믿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웃기고 후반부는 많이 무겁습니다. 처음 볼 때는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진다고 느꼈지만, 다시 보니 앞부분의 옥분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증언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옥분은 일본군‘위안부’ 피해라는 기억만으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장에서 수선집을 운영하고,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고, 잘못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옥분의 일상을 먼저 봤기 때문에 증언대에 선 모습도 역사책 속 인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울었다고 해서 제가 그 아픔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눈물이 잠깐의 감동으로 끝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왜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는지 기억하고, 누군가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판단부터 하기보다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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