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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부산행」의 주요 사건과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곡성」이 2016년 5월에 개봉했고 「부산행」은 같은 해 7월에 개봉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에서 흔하지 않았던 오컬트와 좀비 장르가 연이어 흥행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두 영화를 이어서 생각해 보니 괴물보다 가족이 먼저 보였습니다.
「곡성」의 종구가 딸을 살리기 위해 누구를 믿어야 할지 흔들리는 아버지였다면, 「부산행」의 석우는 딸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좀비가 사람을 덮치는 장면보다 내 마음에 더 오래 걸린 것은 수안의 표정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있는 엄마를 만나고 싶었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는 아빠이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석우가 좀비와 싸우는 장면보다 딸에게 같은 게임기를 두 번 선물한 장면이 더 씁쓸했습니다. 돈을 벌어 필요한 것을 사주는 일도 부모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이미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면 아이는 부모가 곁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부산행」은 좀비를 피해 달아나는 영화이기 전에 너무 늦게 딸의 마음을 보기 시작한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부산행 기본 정보
- 제목: 부산행
- 감독: 연상호
- 장르: 액션, 스릴러, 재난
- 개봉: 2016년 7월 20일
- 상영 시간: 118분
- 주요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수안,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부산행」은 딸 수안과 함께 부산행 KTX에 오른 펀드매니저 석우가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와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감염자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바이러스는 객실 전체로 빠르게 번집니다. 닫힌 열차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부산까지 가려고 하지만, 객실마다 감염자가 늘어나고 열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새로운 위험이 기다립니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다가 「부산행」을 통해 첫 실사 장편영화를 연출했습니다.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아역배우 캐스팅을 진행하면서 이야기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부산행」,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연상호 감독 인터뷰
같은 선물을 두 번 산 아빠
석우는 열심히 일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아빠입니다. 하지만 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수안의 생일 선물로 게임기를 준비했지만 이미 어린이날에 똑같은 게임기를 선물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짧은 장면인데 석우와 수안의 관계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석우는 좋은 선물을 사주면 부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안에게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물건이 아니라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아빠였습니다.
수안은 생일을 맞아 부산에 있는 엄마에게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석우는 처음에는 바쁜 일을 이유로 망설이다가 결국 수안과 함께 새벽 부산행 KTX에 오릅니다.
열차 안에서도 석우는 계속 회사 전화를 받습니다. 수안과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위험이 시작된 뒤에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과 딸이 살아남는 일을 우선합니다.
가족부터 지키려는 마음을 이기적이라고만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도 아이와 함께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가장 먼저 아이의 손부터 잡았을 것입니다.
다만 내 아이를 지키는 것과 다른 사람을 위험 속에 버리는 것은 같은 행동이 아닙니다. 수안은 그 차이를 석우보다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열차 안에서 수안은 할머니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합니다. 석우는 딸에게 이런 상황에서는 자기 자신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을 배려하다가 손해를 볼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수안은 아빠에게 평소에도 자기 생각만 한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살지 않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말이라 짧고 단순하지만 석우에게는 가장 아픈 지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얼마나 인정받는지, 딸에게 얼마나 비싼 물건을 사줬는지는 수안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아빠가 힘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막상 내 아이가 양보해 손해를 보면 속상해합니다. 착하게 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서는 자기 몫을 잘 챙겨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부모가 했던 말보다 실제 행동일 수 있습니다. 힘든 사람을 모른 척하면서 아이에게만 착하게 살라고 말한다면 그 기준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부산행」에서 수안은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이지만 누가 믿을 만한 어른인지 가장 정확하게 바라봅니다. 힘이 센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을 믿고, 아빠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솔직하게 실망합니다.
석우를 바꾼 것은 좀비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딸의 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화가 보여준 다른 아빠의 모습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임신한 아내 성경과 함께 열차에 탑니다. 말투는 퉁명스럽고 첫인상도 거칠지만 위험한 순간에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입니다.
석우가 상황을 계산하고 자신과 딸이 살아남을 방법부터 찾는다면 상화는 뒤에 있는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앞을 막아섭니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아내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지만 자기 가족만 데리고 도망치지 않습니다.
상화는 완벽한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두고 장난을 치는 평범한 남편입니다. 그래서 위험 앞에서 보여주는 선택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석우와 상화, 영국이 감염자들로 가득한 객실을 한 칸씩 통과하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속도감이 좋았습니다. 힘으로 길을 만드는 상화와 상황을 판단하는 석우, 야구방망이를 든 영국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뉩니다.
특히 감염자들이 어둠 속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다음 객실로 이동하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열차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문 하나가 삶과 죽음을 나누고, 빛이 들어오는 짧은 순간에 상황이 완전히 뒤집힙니다.
감염자들이 있는 객실을 통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걱정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까스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인 객실까지 가더라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문을 열어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좀비보다 답답했던 닫힌 문
석우 일행이 감염자들 사이를 뚫고 생존자들이 있는 객실 앞에 도착하지만 용석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미 감염됐을 수 있다며 다른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합니다.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은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위험할 때는 주변 사람을 방패로 사용합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보다 멀쩡한 사람이 더 잔인한 선택을 반복합니다.
나에게 더 답답했던 것은 용석 한 사람보다 그의 말을 따르는 승객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문밖의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문을 열지 않습니다.
나만 반대했다가 우리 가족까지 위험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 두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문밖에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을 바라만 보는 모습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좀비는 감염됐기 때문에 사람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객실 안의 사람들은 자기 판단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는 감염자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무섭게 보였습니다.
영화 속 행동을 보며 화가 나면서도 내가 정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아이가 바로 옆에 있다면 문밖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까요?
상화처럼 행동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석우처럼 망설이거나 객실 안 사람들처럼 침묵할 수도 있습니다. 「부산행」은 관객이 편안하게 정의로운 척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상화가 남긴 아이의 이름
상화는 감염자들을 막아 성경과 다른 사람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줍니다. 여러 사람을 맨몸으로 막아내지만 결국 감염되고 맙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성경에게 전한 것은 태어날 아이의 이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 이름을 두고 장난치던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는 마음속으로 생각해 둔 ‘윤서’라는 이름을 알려줍니다.
상화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합니다. 아이 역시 아빠의 모습을 직접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윤서는 자신과 엄마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버틴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랄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와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지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짧은 순간이라도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아이에게 남을 수 있습니다.
상화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수안과 다른 사람들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앞을 막았습니다. 아직 아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미 좋은 아빠가 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반대로 석우는 딸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았으면서도 수안이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습니다. 상화는 그런 석우에게 아빠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줍니다.
너무 늦게 아빠가 된 석우
영화가 시작할 때 석우는 수안과 함께 기차에 탔지만 마음은 회사에 가 있었습니다. 위험이 닥친 뒤에도 처음에는 자신과 딸만 빠져나갈 방법부터 찾습니다.
하지만 상화와 함께 감염자들을 통과하고, 문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누군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달라집니다.
후반의 석우는 처음처럼 오래 계산하지 않습니다. 수안과 성경을 살리기 위해 먼저 위험을 감당합니다. 자신의 딸뿐 아니라 상화가 목숨을 걸고 지킨 성경과 뱃속의 윤서까지 함께 보호합니다.
나는 석우가 갑자기 정의로운 영웅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딸을 사랑했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면 아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수안은 아빠에게 더 비싼 선물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고, 자신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아빠를 원했습니다.
석우는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수안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아빠가 됩니다.
부산행 결말과 수안의 노래
부산으로 향하는 기관차에는 수안과 성경, 석우가 남습니다. 그러나 감염된 용석이 마지막까지 그들의 앞을 막고 석우를 물어버립니다.
석우는 자신이 감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수안과 성경을 안전한 곳으로 보냅니다. 수안은 아빠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며 매달립니다. 아빠가 이제야 자신을 바라보고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바로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잔인했습니다.
석우는 완전히 변하기 전에 열차 뒤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면서 수안이 태어났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갓 태어난 딸을 처음 품에 안고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딸이 태어난 순간에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바라봤지만 바쁘게 사는 동안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처음 아빠가 됐던 날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석우는 감염된 자신이 딸을 해치기 전에 열차에서 떨어집니다. 이 장면이 슬펐던 것은 단순히 석우가 죽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이제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함께할 시간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안과 성경은 부산에 도착해 어두운 터널을 걸어갑니다. 반대편에 있던 군인들은 두 사람을 감염자로 의심하고 사격을 준비합니다.
그때 수안이 노래를 부릅니다. 학교 발표회에서 아빠에게 들려주고 싶었지만 끝까지 부르지 못했던 노래입니다. 노랫소리를 들은 군인들은 터널 속에서 걸어오는 존재가 감염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아빠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노래가 결국 수안과 성경을 살립니다. 석우는 그 노래를 직접 듣지 못했지만 수안은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립니다.
감정을 강하게 끌어올리는 결말이라 신파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뜬금없이 눈물을 요구하는 장면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에 석우가 놓쳤던 딸의 목소리가 마지막에는 두 생명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어른으로 남을까
「부산행」은 빠르게 달리는 감염자와 좁은 열차 안의 액션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다만 용석이 위험할 때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과정은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현실적인 이기주의자라기보다 관객의 분노를 끌어내기 위한 인물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영국과 진희의 관계 역시 조금 더 쌓였다면 마지막 비극이 더 깊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함께한 시간이 충분히 나오지 않아 감정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럼에도 「부산행」은 좀비 액션과 가족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연결한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석우의 변화가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끝나지 않고 상화와 수안, 열차 안 사람들의 선택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에게는 수안이 아빠를 바라보는 모습이 오래 남았습니다. 석우는 처음부터 좋은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딸이 가진 물건을 기억하지 못했고 아이의 발표회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수안에게 자기부터 챙기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린 뒤에는 이전과 다른 행동을 선택합니다. 부모라고 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바쁘게 사는 동안 아이의 말을 놓칠 수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랑의 전부라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을 때 행동을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수안은 아빠가 사준 게임기보다 마지막에 자신을 지켜준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윤서도 아빠의 얼굴은 모르지만 엄마에게 상화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으며 자랄 것입니다.
나 역시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될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무엇을 사줬는지보다 힘든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이가 말을 걸었을 때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실수한 뒤 행동을 바꿨는지가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부산행」은 재난 속에서 누가 가장 힘이 센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두려운 순간에 누구의 손을 놓지 않았는지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좀비보다 무서웠던 것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겨낸 것은 거창한 영웅심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평범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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